인카코리아 첫 학술모임 후기
김 겸(보존가)
지난 6월 22일 국립현대미술관 교육관에서 인카코리아(INCCA Corea) 첫 발족식 및 학회를 개최하였다. 페이스북 등 활용한 회원간의 간접 홍보 만이었는데도 교육관을 꽉 채울 만큼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다. 김은진 인카코리아 코디네이터의 인삿말과 소개 후 다섯 꼭지의 주제 발표를 진행하였다. 첫 학회는 현직 작가분들과 도색전문가 등 실제 작품 제작과정 상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보존에 필요한 정보 및 서로간의 소통을 통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작가와의 대화’를 주제로 잡게 되었다.
첫 발표는 권오상 작가와 최지현 보존가가 ‘사진조각과 뉴스트력쳐’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권오상 작가는 조형하려는 대상의 세부 부분의 사진을 인화하여 표면에 이어 붙여 만든 입체조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진조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빠르고 쉽게 조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결과라고 하였다. 1999년 첫 사진 조각이 등장하였으며 당시의 작품들의 구조가 알루미늄 뼈대에 글루건으로 사진들을 붙여 만든 탓에 작품이 가벼웠던 반면 사진들이 떨어지는 등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러한 다소 취약한 제작 기법이 선택된 이유 가 ‘쉽고 빠른 제작기법’에서 기인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는 현대사회의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이미지의 소비방식 역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후 좀 더 복잡하고 세밀한 형태의 표현과 구조적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아이소핑크로 내부를 조형한 후 사진을 붙이고 에폭시 수지로 코팅하는 기법으로 변화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작도 최소 두 달이 소요되므로 작가는 더 빠른 제작 방법을 고민하였고 잡지 사진을 오려 공간에 늘어놓고 다시 촬영하는 ‘펑면시리즈’를 시작한다. 최근의 뉴스트력쳐 시리즈는 평면시리즈의 이미지를 알루미늄이나 나무판에 프린팅한 이미지를 붙이거나 직접 프린팅하여 지면에 조형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칼더의 스테디빌과의 연관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초기 작품들의 보존에 관해 작가는 필름 및 사진 여벌을 인화하여 작품별로 아카이빙을 해두고 있다고 하였다.
두번째는 작가의 작품에 옷을 입혀주어 비로소 완전체를 탄생시키는 정유준 페인트보이 대표와 유난이 보존가의 대담형식의 발표가 있었다. 정유준 대표는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었이 고민하고 임상을 반복해온 도색 장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정대표가 이 강연의 의뢰를 받았을 때 도색이 잘된 예들을 중심으로 작업 과정을 설명해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정작 발표자 본인이 실패했던 예들을 들어 문제점을 다시 기억하고 되짚어 보길 원했다고 하였다는 언급에서 그가 작업에 임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작가와의 소통과정에서 오해나 갈등이 생길 경우에도 발표자는 모든 갈등 상황을 문제해결의 방향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는 결과물과 도색 후 도막의 보존상태에 그대로 반영된 듯 보였다. 현재는 부인과 두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기에 크고 무거운 작품에 애를 먹는 다고 한다. 이 일을 배우고 수련하며 보조를 해 줄 젊은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대표는 성공적인 도색의 요인을 작가와의 소통과 약속이라고 하였다. 그는 명실공히 마음으로 작업하는 이시대의 장인이었다.
세번째는 최우람 작가와 진지영 보존가의 ‘키네틱 아트의 기술적 이슈와 관리방안’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 내내 최우람 작가는 작품의 이미지와 움직임의 이미지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공부를 쌓아가는 구도자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작가이기에 앞서 철저한 테크니션으로서 금속, 구동계, 전기 등 재료는 물론 설계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법에 통달해 있었다. 움직이는 작품인 만큼 모터의 수명과 구동 부품의 금속피로에 따른 파손 대책에 충분한 노우하우를 축적해 가고 있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실제 작동하중(수명) 보다 10배 이상의 수명을 담보할 수 있는 부품을 선택하며 전시나 설치된 환경에서 일정시간만 작동하게 하는 보존대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소장자에게 모터나 부품의 모델, 규격 정보가 담긴 관리 메뉴얼을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윤활유를 공급하게끔 하고 있었다. 이러한 하드웨어의 보존에 대한 대책은 물론 작동을 위한 프로그램의 보존을 위해 교체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경우 작가의 사후에도 문제가 없도록 서명된 협의가 필요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최우람 작가는 3차원 공간에서 경험을 안겨주는 자신의 작업이 자연스레 VR을 활용한 경험으로도 확장될 것임을 이야기 하며 미래엔 미술관 자체가 VR로 대체될 것임을 예견하기도 하였다.
네번째는 ‘물질과 비물질 : 뉴미디어 아트의 특성과 보존’에 관해 영남대학교 유원준 교수와 신기운 작가의 발표가 이어졌다. 기획자이며 이론가인 발표자의 특성을 보여주듯 새로운 미술형식의 기술(언급)에 적합한 새로운 개념과 용어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서 ‘storage저장, migration이주, emulation구현, reinterpretation재해석’ 이라는 네 가지 개념이 필요한 것은 물질로만 존재하지 않는 뉴미디어 아트의 정체와 보존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적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개념들의 설명과 함께 예로 보여준 초기 뉴미디어 작품들의 기록은 무척 흥미로웠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우리들의 인식이 어떻게 확장되어왔으며 또 작가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미래를 보고 있었는가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발표의 제목처럼 보존해야할 대상은 물질이며 동시에 비물질적인 것들이며 비물질인 개념, 혹은 경험을 보존한다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험(전거, reference)을 경험(experience)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뜻깊은 발표였다. 필자가 ‘경험’이란 단어를 무리하게 반복한 것은 보존가로서 뉴미디어 아트의 보존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빗대기도 하였지만 결국 참조할 것은 경험의 기록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마지막 발표는 필자의 ‘현대미술보존 방법론’ 이었다. 방법론methodolgy 이라는 것이 인문학적 고찰인 만큼 용어해설을 중심으로 한 텍스트 중심의 발표였다. 필자는 철저한 테크니션으로서의 보존가가 열린 구조의 예술작품을 다룰 때, 즉 의미와 개념을 담은 물질로서 작품을 다루는 보존가가 직면하는 문제들을 다루고자 하였다. 필자는 오랜 기간 보존가로 미술계에서 활동해 오면서 보존가들이 자칫 학예사, 이론가, 작가의 요구에 충실히 따르는 기술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을 언급하고 싶었고, 이런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사례를 다루는 것이 아닌 서구의 보존가들이 고민하고 연구해온 전거들의 소개를 통해 보존가 자신이 이론적으로 무장하여 보존복원 현장에서 중심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였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발표자, 참가자가 어우러진 짧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필자를 포함하여 학회에 참여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은 평소에 접하기 힘든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참여한 작가들을 통해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작품의 건강상태와 작가 사후에도 살아가게 될 작품의 환경에 얼마나 깊은 관심과 연구가 쌓여오고 있었는가를 체감하게 되어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